세계의 디지털 인문학자 여러분,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DHO 제36차 대회(36th annual conference of the Alliance of Digital Humanities Organizations, DH2026)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이 저에게는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저는 8년 전에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DH2018 대회에 참석했었고, KADH(Korean Association for Digital Humanities Organizations) 회장 자격으로 이 세계적인 학술대회의 한국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했었습니다. 지난 8년간 KADH가 소망하고 준비해 온 일이 2026년 오늘 한국의 대전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대회 준비를 위해 헌신하신 DH2026 조직위원회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역사적인 학술대회의 개막일에 제가 기조강연자로 여러분들을 뵙게 된 것은 너무도 큰 영광입니다. 이 뜻깊은 시간에, 세계의 디지털 인문학을 주도하는 뛰어난 학자들을 청중으로 모신 자리에서 내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세계의 DH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주제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깊은 지식과 뛰어난 영감을 지니신 분들이 이 자리에 많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차례의 고민 끝에, 이 자리에서 내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지난 40여 년간 인문학과 디지털 기술 사이에서 내 스스로 고민하고 모색해 온 것을 진솔하게 말씀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길을 찾으려고 분투해 온 어느 고전인문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한문으로 쓰인 동아시아의 고전문헌을 읽고 해석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고전인문학자입니다. 나의 20대 청년 시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은 한문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동아시아 고전의 양적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다는 것과 그것을 함께 공부할 동료들의 수가 너무도 적다는 사실에 좌절했습니다. 이때 저에게 희망을 준 것은 “컴퓨터가 고전인문학 공부의 조력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철학 전공 박사 과정의 코스워크를 마치자마자 당시에 한국 컴퓨터공학 연구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과학기술원(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 Technology, KAIST)의 연구원이 되었고, 그곳에서 데이터베이스와 텍스트 데이터 아카이브, 정보 검색 기술에 관한 훈련과 개발 경험을 쌓았습니다.
1995년에 나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방대한 역사기록을 CD-ROM에 담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당시에 CD-ROM은 첨단 디지털 미디어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모든 한국인이 그 이름을 알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록문화유산입니다. 이때부터 한국 사회는 인문학 분야의 학술/교육 활동에 컴퓨터가 쓰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 모델은 수많은 종류의 고전인문학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을 견인했습니다. 2000년대 초, 한국 정부는 “디지털 기반 지식 강국으로 발전한다”는 명분으로, 학술연구의 자료가 되는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의 선례가 있는 고전인문학 분야도 그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업의 결과로, 방대한 규모의 디지털 데이터 아카이브가 고전인문학 연구자들의 새로운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나에게는 이 변화가 새로운 문제 상황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고전인문학 자료에 대한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되었지만, 그 데이터를 실제로 읽고 해석하는 데 드는 시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전체 아카이브 수록 데이터 가운데 고전인문학 연구자들이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은 “이와 같은 기초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라는 회의에 들게 했습니다.
한편, 이런 회의와 실망감은 고전인문학 데이터 아카이브의 미래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했습니다.
나는 200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부임하면서, 20년 만에 나의 원래 전공 분야인 고전인문학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고전인문학 연구와 교육이 디지털 환경에서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나의 연구와 교육은 예외 없이 전통적 인문지식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이라는 실천적 프로젝트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매년 학생들과 함께 새 주제의 데이터 큐레이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쓸 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결론에 담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아카이브 속 시맨틱 데이터의 고객은 인간보다 AI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AI는 이 데이터를 가지고 인간 고객이 인문학의 지식 세계에 더 쉽게 다가가게 할 것입니다.”
2022년 11월 ChatGPT의 상용화 이후, 디지털 기술에 무심했던 사람들도 AI가 한문 고전 텍스트의 해석을 도울 수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마다 진화하는 LLM의 언어 구사력과 추론 능력, 특히 내가 주목하는 고전 한문 텍스트의 해석 능력은 실로 경이롭다고 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전통문화 온톨로지와 한문 고전 텍스트 XML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에 주력해 온 나와 나의 연구 팀은 드디어 AI 기반 고전인문학 교육/연구 환경의 실현을 목전에 둔 것 같아 몹시 흥분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인문학계의 사람들이 모두 이같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고전 한문 텍스트의 해석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온 한문고전학 분야에서는 ‘한문 잘하는 AI’의 등장이 자칫 이 분야 연구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도 그 같은 부정적 사고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문 고전 연구자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고전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그 내용을 사회와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AI는 한문 고전을 번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석가의 해석을 비교하고, 방대한 문헌 자료를 검색하여 관련 정보를 정리하는 일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많은 고전인문학자들은 당혹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AI가 이렇게까지 한문을 잘한다면, 앞으로 인간 연구자의 전문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고전 연구자는 결국 AI에게 대체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만약 전문적인 인간 연구자가 AI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고전연구가 알려진 지식을 대중적 수요에 따라 윤색하는 일 정도로만 남게 된다면, 과거에 인간들이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기 위해 수행해 온 치열한 실천의 노력 자체가 점차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인문학의 생명은 특정 질문에 대한 정답으로서의 지식에 있지 않습니다. 인문학의 핵심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호기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 답을 찾으려는 의지와 열정에 있습니다. 인간이 인문학적 탐구를 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질문하고, 길을 찾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깨닫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AI의 발전이 초래한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의 과잉”이 인간의 주체적 지적 탐구를 시들게 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고전인문학자들이 AI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전통적인 방식의 인문학 활동이 장려되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볼 때, AI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그것의 능력이 인간의 기대에 못 미쳐서가 아니라, 인간이 해온 중요한 일을 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AI도 안 하게 되는 것, 그것이 소멸입니다.
전통적인 인문학자들의 시선에서 감지되는 반(反)AI 정서와 고전인문학 위기론은 나에게도 무거운 좌절의 그림자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아무리 AI 기반 고전연구의 성과를 보여 준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동료, 후배 연구자들이 볼 때 인간이 한 일이 아니고 컴퓨터가 한 일로 인식되는 한, 그것은 인문학의 혁신이 아니라 인문학의 소멸로 여겨질 것입니다. 학계가 관심을 갖지 않는 고전인문학 활동은 성과의 우수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디지털 인문학 활동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다른 방향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AI 기반 한문고전인문학 환경을 만드는 일의 최우선 과제는 인간 연구자가 그 활동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전제하고,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AI 시대에 무겁게 제기되는 “고전인문학 위기론”의 핵심 논점은 “AI가 인간 인문학자의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또는 “AI가 고전인문학 자체를 소멸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일도 있습니다. “고전인문학”도 그런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질문은 “AI 시대에도 인간은 배우고, 탐구하며, 고전을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에서부터 미래의 고전인문학의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AI와 인문학 활동을 대척적으로 보는 사고의 원인부터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이 자리에서 ‘인문학’의 의미를 현대적인 분과학문으로서의 인문학(Humanities)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고전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학(學)과 습(習)’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논어』의 첫 구절을 들어보셨겠지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인문학의 본질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요소는 바로 ‘학(學)’, ‘습(習)’, 그리고 ‘열(說, 悅)’입니다.
먼저 ‘학(學)’은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일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고, 새로운 관점을 이해하며,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근현대 교육과 연구는 대체로 이 영역에 집중해 왔습니다.
다음으로 ‘습(習)’은 그렇게 배운 지식을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배운 것을 자신의 행동과 경험 속에서 시험해 보고, 적용해 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열(悅)’은 그러한 실천을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보람, 그리고 자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가깝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학문은 단순히 ‘배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배움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실천은 기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다시 새로운 배움의 동력이 됩니다. 다시 말해 학문은 ‘학(學)-습(習)-열(悅)’의 순환적이고 점증적인 과정인 것입니다.
만약 학문을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라고만 정의한다면, AI는 이미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기억하고, 수많은 문헌을 즉시 검색하며, 순식간에 번역과 요약을 수행하는 능력에서 인간은 AI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학문을 단순한 정보의 축적과 처리 능력으로만 본다면, 인간 연구자는 AI 앞에서 점점 더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의 본질이 ‘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습’, 즉 실천의 영역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열’, 즉 삶의 기쁨과 의미를 경험하는 영역 역시 인간만의 것입니다. AI는 정보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어떤 지식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과 성장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보면, AI 앞에서 고전인문학자가 느끼는 불안은 사실 AI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고전인문학의 본래 정신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하고, 학문을 지식 습득의 영역에만 가두어 두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I의 등장이 우리가 잊고 있던 인문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의 유학자 정약용은 『논어』의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매우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學所以知也, 習所以行也, 學而時習者, 知行兼進 navigation. 後世之學, 學而不習, 所以無可悅也.”
“배움은 알기 위한 것이고, 익힘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앎과 실천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날의 학문은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기쁨이 없다.” (정약용, 『논어고금주』)
이 해석은 오늘날 AI 시대에도 깊은 시사점을 줍니다. 배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배움이 없다면 실천할 내용도 없고, 기쁨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움이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배움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삶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되고, 그 실천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다시 더 깊은 배움의 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학문은 살아 있는 활동이 됩니다.
따라서 AI 시대에 고전인문학의 존재가치를 유지시키는 길은 인간 연구자가 AI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거나, 더 정확한 번역 능력을 갖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AI가 이미 잘하거나 조만간 더 잘하게 될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식 중심의 연구와 교육을 넘어, 실제로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그 과정에서 만족과 자존감,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인문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는 AI 시대 인문학의 위기론은 우리가 인문학을 지나치게 ‘지식의 습득’으로만 이해해 온 데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실천적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물론 학문의 내용에 따라 실천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실천과 문학 연구자의 실천이 다를 수 있고, 철학자의 실천과 예술가의 실천 역시 서로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학문에 적용되는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인문학적 실천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 요건에 부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 그것은 행위자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논어』와 정약용의 해석에 따르면, ‘습(習)’은 반드시 ‘열(悅)’로 이어져야 합니다. 실천은 고통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낳는 행위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까요? 아마도 성취감일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만족감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는 자존감일 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적 실천이란 인간의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이 기쁨으로 보상받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AI 시대의 실천적 행위는 AI라는 환경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AI는 이미 우리의 연구 환경이고, 교육 환경이며, 생활 환경입니다. 이제 AI를 완전히 배제한 채 살아가거나 연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 의지에 맞게 다루고 즐거움을 얻을지를 아는 것입니다.
“AI가 환경인 세상에서 자기주도적 노력으로 성취의 기쁨을 얻는 인문학술 활동”은 고전인문학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모습입니다.
그 정신은 공자 시대부터 추구해 온 것이지만, AI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재현하는 일이니 그 길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는 전통적인 고전인문학 연구자가 AI 환경에서 학술적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그 훈련이 지향하는 학술활동을 “AI 고전번역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 “AI 고전번역학” 교육 프로그램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겠습니다.
AI 고전번역학은 한문 고전을 현대어로 옮기는 작업을 넘어, 고전 지식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고,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해 고전인문학의 해석 전통을 계승하고 확장하려는 실천적 학문입니다.
전통적인 고전 번역의 목표는 인간 독자를 위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연구자는 원문을 읽고 해석하여 한국어 번역문을 작성하고, 독자는 그 결과물을 읽으며 고전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새로운 과제가 등장합니다. 이제는 인간 독자뿐 아니라 AI도 고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번역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텍스트의 구조, 용어의 의미, 개념 간의 관계, 문헌의 맥락과 같은 정보들이 AI가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AI 고전번역학은 XML, 시맨틱 데이터, 온톨로지와 같은 구조화된 지식 표현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의 해석과 AI의 해석은 서로 비교될 수 있고, 상호 검증될 수 있으며, 더 깊은 이해를 향해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AI 고전번역학은 인간의 해석을 AI에게 전달하는 작업인 동시에, AI의 해석을 인간이 다시 검토하고 성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생각을 실제 교육과 연구 현장에서 실험해 볼 수 있도록 CCTI(Classical Chinese Text Interpreter)라는 이름의 실습 환경을 구현했습니다.
CCTI는 대형언어모델 API를 활용하여 고전 한문 텍스트의 해석 과정을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연구용 시스템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시스템이 번역 결과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해석 과정 전체를 학습하고 검토하도록 설계된 도구입니다.
더 나아가 Wiki를 활용한 협업 환경은 전통적인 강독실 문화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합니다. 각자의 해석 결과를 공유하고, 서로 다른 해석을 비교하며, 공동으로 더 나은 해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가능해집니다. 과거의 고전 교육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면적 학습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온라인 공간에서 더 넓은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학습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문고전 번역 전문기관인 전통문화연구회는 1년간의 연구개발과 파일럿 클래스 운영을 거친 후에, 2026년 봄 "AI 고전번역학 입문", "동양화 제발(東洋畵題跋) 번역 및 큐레이션" 등 2개 AI 고전번역학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이 강좌의 수강생은 고전학 연구원, 대학원생, 대학교수 등이었고, 모든 수업은 한문학 또는 미술사학을 전공한 고전인문학 교수와 디지털인문학 교수의 협동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수업 내용은 한문 번역 실습과 함께 실습 텍스트를 AI 가독형 데이터로 구조화하는 방법을 같이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한문 번역 실습에서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스텝을 단계적, 반복적으로 수행합니다.
CCTI 프로그램에서는 사용자와 AI가 주고받는 모든 데이터가 XML 형식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해석 프로세스 진행과 병행하여, 학생들은 디지털인문학 교수로부터 텍스트의 성격에 부합하는 XML 구조 설계 방법, XML 형식을 통해 인공지능과 정밀하게 데이터를 교신하는 방법에 대한 지도를 받고 실무에 적용하는 실습을 했습니다.
추가적으로 DBMS, DB 기반 AI API 활용 방법, Wiki 플랫폼 등을 교육함으로써 "데이터 기반 AI 협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단, "데이터 처리" 기술을 독립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거의 도움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모든 기술적 사항에 대한 교육은 연구자 자신이 지금 해석하려 하는 텍스트를 가지고 AI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AI 고전번역학 교육 과정의 운영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I 고전번역학" 교육 실험에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강도 높게 제기되었습니다.
2026년 교육 수강생은 대부분 고전인문학 연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AI 프로그램 사용, XML 마크업, 위키 문법 등 기술적인 교육 내용을 어렵게 생각했지만, 진행 과정에서는 "배우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고, 개인과제 수행을 통해 기본적인 운용 능력을 습득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서버·데이터베이스 등 데이터 기반 AI 협업 환경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더 큰 부담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의 토론 시간에 학생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어디에서 이와 같은 일을 지속할 수 있나? 앞으로 나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을 위한 디지털 환경을 내가 스스로 조사하고, 공부하고, 비용을 지불하면서 마련해야 하나? 이것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을 따로 받아야 하나? 그것은 가능한 일인가?”
인문학 연구자는 개인적으로 문제를 탐구하고, 단독 강의를 하고, 단독 저자로서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1인 활동" 형태의 연구방법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AI 협업 환경"을 조성하는 일까지 "1인 활동"의 형태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AI 협업 환경"은 사실상 대학의 "도서관"과 같은 "교육/연구 인프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연구자는 CCTI 시스템을 사용하듯이 한 번의 로그인으로 서버에 접속하고, DBMS를 구동하고, AI를 호출하고,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Wiki 문서를 생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연구자가 속한 대학이나 인문 분야의 학술 지원을 담당하는 국가 차원의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지금, 인문학 연구/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공공 AI 연구환경(Public AI Research Environment for Humanities)을 마련하는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AI 고전번역학 과정의 핵심 과업은 우리가 고전인문학의 해석 전통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하는 작업입니다. 인간 연구자가 자기 판단에 의한 데이터를 만들고, 이것으로 AI의 해석이 자신의 견해를 따르도록 조율하는 행위에 대해 “AI를 가르치는 인문학”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AI의 번역과 해석을 검토하다 보면, 처음에는 그 결과가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부로 들어갈수록 의심스러운 부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문득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판단이 생깁니다. 그 순간부터 연구자는 더 많은 자료를 찾고, 더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해석을 정교하게 다듬기 시작합니다. 그 노력의 결과는 데이터로 남아 AI의 지식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물론, 개인 연구자가 개별적으로 생산한 연구 데이터를 집적하여 특정 분야의 전문 AI(Vertical AI)로 발전시키는 것은 그 분야의 다수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기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구도라고 하더라도, AI의 품질을 높이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개인 연구자의 학술적 기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보면, 연구자 개인의 데이터 기반 AI 협업도 “AI를 가르치는 인문학”의 의의를 지닐 수 있습니다.
한편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작업이 AI가 일상과 연구의 환경이 된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실천하는 훈련이 된다는 점입니다. AI에 휘둘리지도 않고, AI를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이 자기 역할을 발견하고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AI와 협업하는 인문학술 활동은 AI를 교육하는 과정인 동시에,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 자신을 교육하는 과정입니다. 교육의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동양의 옛 고전에서는 “敎學相長”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교육은 상호작용이며, 교사와 학생이 모두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敎學相長” (교학상장)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 (『예기』, 학기)
“AI를 가르치는 인문학”은 단순히 AI를 위한 데이터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화 전통과 그 안에서의 주체적 자각을 AI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문화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동시에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 자신의 실천 능력을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AI를 가르치는 일은 사실 인간 자신을 훈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점점 더 많이 대신하게 될수록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려는 동기와 의지를 잃어갈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제공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수동적인 존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살아는 있지만 자기 삶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래 인문학이 탐구해야 할 중요한 의제가 제기됩니다. AI가 인간 활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나는 “AI 문명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이 미래 인문학의 역할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논의가 철학적 담론이나 추상적인 이론에만 머문다면, 그것 역시 결국 AI가 생성하는 비슷한 이야기 속에 희석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AI와 차별화되는 인간 고유의 역할을 AI가 더 잘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 속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인간의 주체성은 생각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경험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이미 AI와 분리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인간의 실천 역시 AI와의 공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래 인문학은 AI를 거부하는 학문도 아니고, AI에 복종하는 학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AI와 동행하면서도 인간의 자기주도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학문이어야 합니다.
AI가 모든 분야의 정보를 탐색하고 생성할 수 있게 되더라도, 인간은
그리고 고전은 인간의 자기 성찰, 삶의 방향 감각, 자기주도적 정신을 훈련하는 검증된 교육 콘텐츠입니다.
AI 시대에도 고전인문학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미래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AI 고전번역학” 교육의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그것이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도여서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고전과 인문학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이론으로 논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실천으로 실험해 보자는 제안이며, 그 첫걸음을 위한 작은 예시를 보인 것입니다.
끝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세계의 디지털 인문학 연구자들께 드리는 부탁으로 저의 강연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디지털 인문학이 기술적 혁신뿐 아니라, 전통 인문학의 텍스트와 연구 전통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를 희망합니다.
이 말은 디지털 인문학 연구자가 모두 전통적인 문헌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꾸로 전통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이 디지털 환경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인문학에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AI 고전번역학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인문학 연구자가 AI와 협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협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공공의 디지털 연구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다양한 전통 인문학 분야의 연구와 교육이 AI 시대의 연구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를 위한 공통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며, 연구자와 학생들이 그 환경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면, 그 일을 주도하거나 그 일에 협력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인문학과 디지털, 두 세계를 융합적으로 이해하는 여러분들일 것입니다.
디지털 인문학 연구자는 인문학자 중에서 디지털 세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입니다.
전통 인문학과 AI를 연결하는 이 같은 전환(Transformation)의 매개자 역할에 대해 디지털 인문학 연구자 여러분의 관심이 더해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